• 최종편집 2022-07-30(토)
 
섞어찌개_푸드칼럼.png
 
70~80년대에 섞어찌개라고 있었다. 김치찌개를 베이스로, 오징어를 듬뿍 넣은 매콤한 찌개다. 때론 약간의 돼지고기가 가세하기도 한다. 다진 마늘과 빨간 다대기를 듬뿍 넣어 해장용으론 그만이었다. 특정한 레시피가 있는 것처럼 말은 했지만, 다양한 식재료들을 섞어서끓이면 섞어찌개다. 냉장고에 낙지가 많이 남았으면 낙지를, 소고기가 남았으면 소고기를, 미더덕이 충분하면 미더덕을 투하해주면 된다. 특유의 짭쪼름, 시원한 맛을 내는 오징어가 필수 베이스이긴 하지만.   
그런데 해장용으론 그만, 이라고 썼지만, 70~80년대에는 초중고교를 다닐 때라 해장할 일이 없었다. , 학생이라고 술을 안 먹는 건 아니고, 못 먹을 것도 없지만, 그래도 모범생 축이었기 때문에, 학력고사(요즘의 수능) 백일 전, 백일주 외엔 술을 먹어본 적이 없다. 어쨌거나 찌개를 즐길 일은 없던 나이였다. 그러나 섞어찌개의 구성과 내력과 본질을 나는 아주 상세하게, 내가 직접 본 것처럼 꿰뚫고 있다.   
맞다. 나는 섞어찌개의 탄생을 내 눈으로 직접 봤다. 1970년대 중반, 명동의 한 골목에서 장사하시던, 돌아가신 우리 외할머니가 대한민국 섞어찌개의 원조이기 때문이다. 이거 진짜다.   
잘 안다. 음식의 원조논쟁은 곧잘 증거 없는 공방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러다 흐지부지 되고, 나중엔 논쟁의 당사자들 모두가 원조를 참칭하게 된다는 걸. 그런 식으로 족발 거리에도, 함흥냉면 골목에도, 즉석 떡볶이 거리에도 수십 개의 원조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간판마다 나붙은 원조의 글씨들이 갈수록 굵어지고 커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섞어찌개의 경우는 다르다. 향후 격화될지도 모를 섞어찌개 원조 논쟁에 대비해 짤막한 에피소드부터 하나 글로 기록해두려고 하는데, 다른 원조논쟁에 등장하는, 상투적 일화들과는 차원을 달리 한다는 걸 보자마자 알 수 있다.   
70년대 식당의 카운터 위에는 빠지지 않는 물건이 하나 있었다. 명함 절반 크기의 성냥갑이다. 성냥 30~40개가 빼곡한 이 성냥갑은, 당시로선 중요한 마케팅 툴(tool)이었다. 조그만 정사각형의 공간에 식당 이름과, 전화번호 그리고 주요 메뉴들이 조그만 글씨로 박혀 있었다. 라이터가 흔한 시절이 아니라, 담배 피는 이들은 그 성냥을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집에서도 연탄불 때고, 풍로(옛날엔 곤로라 했는데, 찾아 보니 일본말)에 불붙이려면 성냥이 필요할 때였다. 글자 몇 개 안 들어가는 조그만 성냥갑에, 식당과 메뉴에 관한 정보를 때려 넣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했던 이유다.   
명동의 외할머니 식당도 당연히 성냥갑을 판촉물로 찍었다. 70년대 중반의 바람 차던 어느 겨울, 할머니네 식당에 놀러갔다가 성냥갑 하나를 들고 집에 돌아온 나는, 방에서 성냥갑을 가지고 놀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성냥갑에 적힌, 식당의 대표 메뉴 때문이었다.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 썩어찌개  
흥분한 나는 바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이거 봐. 할머니한테 빨리 전화해.”
?”
성냥갑, 이거 보라고.”
할머니네 식당에서 얼마 전에 메뉴 새로 개발한 거 너도 알잖아! 오징어랑, 김치랑, 미나리랑 식재료들 다 섞어서 만드는 찌개. 너도 먹어봤잖아. 그게 섞어찌개야.”  
네에, 섞어찌개 저도 잘 알고요. 그걸 왜 썩어로 적느냔 말씀이죠, 란 설명이 필요하진 않았다. 엄마는 잠깐 놀라고, 한참을 웃더니 나중에 성냥갑 찍을 때 제대로 찍으라 말씀드리겠다고 했다.   
, 어떤가. 성냥갑의 오타(‘썩어찌개’)와 엄마의 담담한 설명(“얼마 전에 메뉴 새로 개발한 거 너도 알잖아!”)은 기존의 원조 논쟁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 아닌가. 과문(寡聞) 탓인지 몰라도, 어떤 원조 논쟁에서도 이렇게 생생한 에피소드를 본 적이 나는 없다.   
얼마 전 어머니에게 당시 상황을 말씀드린 적이 있다. 벌써 40년이 흐른 탓일까. 어머니는 성냥갑 사태를 기억하지 못했다. ‘섞어찌개썩어찌개로 잘못 썼다는 얘기, 그걸 내가 제일 처음 발견했다는 얘기를 힘주어 여러 번 말씀드렸지만, “기억 안 난다라고만 하셨다. 하지만, 외할머니가 섞어찌개를 대한민국 최초로 만들었다는 사실만은, 다시 확인해주셨다.
장사를 하다 보면, 식재료들이 짜투리로 남게 되거든. 할머니가 그렇게 조금씩 남는 식재료들을 한데 모아서 새로운 찌개를 만든 거지. 그리고 그게 큰 인기를 끌었던 건, 양념 때문이야. 할머니가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면서 마늘이랑 다대기를 일일이 냄비에 넣어주셨거든. 양념이 싱싱해서 사람들이 정말 좋아했어. 그리고는 옆에 다른 식당들도 섞어찌개라고 메뉴를 만들기 시작한 거지.”  
이 정도 설명했는데도 못 믿겠다면, 어쩔 수 없다. 70년대 중반 영업이 막 끝난 우리 외할머니 식당 구석에서 있었던 신 메뉴 개발 회의의 녹취록을 가져와보라거나, ‘썩어찌개의 오타가 선명했던 성냥갑을 보여달라 하면 물론, 못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한민국 섞어찌개의 원조가 우리 외할머니란 사실이 변하는 건 아니다.
진짜다.
, 그런데 섞어찌개의 원조가 누군지 관심 있단 사람도 별로 없는데, 왜 그리 흥분하냐고요?
그러게요.
   
[이지형 / 푸드칼럼니스트]
이지형 칼럼니스트 기자 mediachfc@gmail.com 이 기자의 다른 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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